2025년으로 넘어가는 문턱에서, 일터의 소로.
2024년 짧은 회고, 일터의 소로가 주는 메시지, 바람직한 삶의 태도, 2025년 짧은 목표.
OpenAI에서 만든 ChatGPT, 구글에서 만든 Gemini(왠지 잼민이 같다), Anthropic에서 만든 Claude 등 다양한 LLM 기반 AI들이 등장했다. 이것들은 우리 일의 생산성을 멋지게 높여준다. 요즘 일에 대한 생각이 많은 나는 Perplexity라는 검색 특화된 AI에게 “일에 대한 담론”이 써져 있는 책을 물었다(Perplexity는 몇번 써보니 구글 검색을 대부분 대체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온 게 일터의 소로이다.
사람들은 대개 일을 더 잘 하고 성과를 더 인정받는 성공적인 삶에 관심이 많다. 실제로 일과 관련된 책을 찾아봐도 온통 자기계발서 뿐이었다. 그런데 나는 인정받고 돈 많이 버는 삶을 산다고 행복해질 것 같지 않았다. 행복의 길은 다른 데에 있다고 믿었는데, 이는 설득력이 꽤 떨어지는 문제점이 있었다. 나 혼자야 어떻게든 살면 그만이지만, 나의 가족이나 가까운 사람들에게까지 무욕의 삶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할 수 없었다. 무한 경쟁 체제 속에서 살아남을 수 없을 것 같다는 막연한 생각이 있을 뿐이었다. 내 안에서 답을 찾을 수 없겠다는 결론을 냈다.
이 지구상 대부분의 사람들이 노동을 하고 임금을 받는 삶을 살고 있을텐데, 다들 어떤 마음으로 일을 하는지가 궁금했다. 별 생각 없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사람, 자아실현을 할 수 있는 뜻깊은 일을 찾아 열심히 하는 사람, 별로 돈이 안되는 일을 하는 사람, 일을 했다가 안하는 사람, 안했다가 하는 사람, 돈이 많아서 평생 일을 해본 적이 없는 사람 등 저마다 인생을 살아갈 동력이 되는 가치가 있을텐데 그게 무엇일지 궁금했다.(결론적으로 그와 관련된 내용은 딱히 없다. 커피챗을 좀 해봐야지…)
일터의 소로라는 책이 눈에 들어온 나는 목차만 보고 바로 주문했다. 목차는 짤막한 텍스트로 10장 있는 게 다다. 길지 않으니 여기서도 다 열거할 수 있다: 퇴사, 출근 도장 찍기, 육체 노동, 기술 발전과 일, 농담과 일, 무의미한 일, 불성실과 부도덕, 월급의 기회비용, 불행의 동반자, 보람 있는 일. 무슨 이야기를 할지 좀 기대가 됐다.
소로라는 인물은 19세기 활동한 미국의 사상가이다. 그의 사상은 톨스토이, 간디, 마틴 루터 킹 등의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었을 만큼 울림이 있었던 듯 하다. 이 책에서는 노동자로서의 그의 삶을 돌아보고 두 저자의 생각도 곁들이면서 일에 대한 담론을 소개한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어떤 마음가짐으로 어떤 일을 해야 소로적인 삶을 살 수 있는지 이야기한다. 사실 소로가 사람의 이름이라는 게 크게 중요하지는 않았다. 난 이 책을 열어보기 전까지도 몰랐다. 배경을 몰라서 조금씩 찾아보긴 했지만, 소로를 몰라도 읽는 데 전혀 무리는 없다.
지금 일하고 있는 회사는 내 개발자 커리어의 첫번째 회사이다. 만 3년을 넘게 일했으니 이제 4년차가 된다. 주위에서는 지금이 가장 몸값이 좋을 때가 아니냐며 이직에 관한 생각을 묻는다. 행동해야 할 최적의 시기가 바로 지금이라는 사실은 중요하다. 삶의 방향성을 결정하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좀 더 근사한 곳으로 이직한다면 별 생각 없이 시류에 편승하는 것이고, 지금의 회사에 굳이 남는다면 신념을 고집하느라 실리를 취하지 못한다는 평가를 받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 두가지 시각이 모두 마음에 들지 않는데, 그 이유는 시류나 신념이라는 가치가 이미 결정된 채로 배경에 깔려있기 때문이다. 더 바람직한 직장으로 옮기면서 삶을 업그레이드하는 것이 정석인가? 그 정석은 어디에서 오는 건가? 전부 자본주의의 힘인가?
자본주의는 18세기 후반 영국에서 발생한 산업 혁명을 기점으로 본격적으로 나타났다. 은행들도 등장하고, 부작용 방지를 위해 복지와 규제도 많이 생기고, IT 기술이 발달하면서 전 세계적으로 돈이 오갈 수 있는 환경도 마련되었다. 이 시스템의 일원으로서 많은 노동자들이 고된 일들을 하고 임금을 받아 필요한 물건을 사거나 가족을 부양한다. 열심히 일해서 받은 돈으로 더 나은 삶을 살겠다는 꿈은 아주 유효하다. 자본주의는 지금 전 세계적으로 사람들에게 굉장한 영향을 미치고 있고 수많은 행동 양식들의 근간이 되어준다. 자본주의는 가장 나은 사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본주의는 구멍 투성이이다. 사람은 기본적으로 생물이다. 생물학적인 시스템은 수만년 전부터 천천히, 그리고 굉장히 복잡하게 발달해왔다. 우주적인 관점에서 단세포도 엄청나게 복잡한 물건일텐데 사람은 어떠한가? 게다가 사람은 복잡성을 한층 더한다. 사람은 환경과 과학과 자기 자신을 정복하려 들며 딱히 생존과 관계 없는 예술이나 행복에도 엄청난 가치를 매긴다. 가족과 친구와 연인 등의 관계도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사람이 만든 철학과 사상도 마치 살아있는 생물처럼 시간에 따라 번성과 쇠퇴를 반복하며 변화한다. 사람이 만든 자본주의는 복잡한 현실을 추상화해버리며, 그 결과 재산을 기준으로 사람을 줄세우기까지 할 수 있다! 1등은 일론 머스크일 것이고 몇십 억 명이 그 뒤를 따른다. 일론 머스크가 자본주의에 가장 딱 잘 들어맞는 사람이다. 자연에 존재하는 기준으로는 사람들을 결코 줄세우기할 수 없다.
소로는 가난을 낭만화하는 것이 아니라 욕구와 돈에 대한 열망이 종종 매우 강력한 사슬, 황금 수갑이 되어 영혼을 빨아먹는 일에 우리를 묶어 둔다는 점을 말하고 있다. - 일터의 소로 41p
자본주의가 훌륭한 시스템이라는 사실과는 별개로 대다수의 사람들은 자본주의에 들어맞지 않는다. 적당히 적성에 맞는 일을 하고 불만족스러운 임금을 받는 게 대다수다. 개발자도 마찬가지다. 첫 커리어를 기가 막히게 출발해야 하며, 연봉을 올리려면 슈퍼 개발자가 되어야 하기에 열심히 성장해야 한다. 성장할 수 있는 방법은 가지각색이지만 그 모두를 잘해낼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오픈소스 참여가 좋은 포트폴리오가 된다 한들, 거기에 정신을 쏟아부을 시간과 정성이 부족하다. 이직은 또 타이밍 좋게 해야 한다. LinkedIn을 열심히 하지만 그 무엇 하나 충분하다는 느낌이 안 든다.
자본주의로 행복할 수 없는 사람들이 많으니 자본주의는 훌륭하지 않은 걸까? 자본주의를 추구하면 안 되는 걸까? 어차피 소수의 승자만 살아남게 되고 대다수의 사람들은 성공할 수 없을텐데, 그냥 그 정도에 만족하면서 인생의 다른 가치를 찾아 떠나야 하는 걸까?
나에게 있어 저축을 하는 이유는 안정감이 가장 컸다. 딱히 사고 싶은 물건이나 살고 싶은 집은 뚜렷히 없었지만, 남들 다 하는 저축 그냥 한다는 느낌이었다. 미래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아무도 모르잖아. 그런데 뭔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돈을 아끼고 불리는 행위가 미덕인 것처럼 보였다. 돈은 물건과 교환하기 위한 화폐의 역할이 가장 중요한 것 아닌가? 자본주의는 인간을 위해 존재하는 것인데, 마치 인간이 자본주의를 위해 존재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나는 자본주의와 그렇게 어울리는 사람이 아닌데 불편하게 친한 척 하는 것 같았다. 어차피 이미 돈이 많은 사람들을 이길 수도 없다. 돈은 됐다 치고 인생의 다른 가치를 찾아나가는 게 더 좋아보였다. 그래서 2024년에는 저축과 투자를 일절 하지 않고(원래 안하기도 했지만 더더욱 멀리했다), 돈에 대한 걱정도 일찌감치 싹을 잘라내면서 살았다.
2024년에는 학교를 끝냈다. 방통대를 다녔던 이유는 미래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니까 학위를 따서 안정감을 확보하기 위함이었다. 이직 활동도 적극적으로 하지 않았다. 지금 회사는 내 성향과 적당히 잘 맞고 불만이 딱히 없었다. Rust 스터디, 메모어, 글또 등 커뮤니티 활동도 했다. 새로운 사람들과 아주 깊은 관계를 맺지는 못했고 다양한 이야기들을 맛만 봤다(2022년 했던 봉사활동과도 비슷하다). 렛츠커리어라는 사이드 프로젝트에 참여해 회사 밖에서 협업이란 것도 해봤다.
그런데 이렇게 써놓고 보니 깨달았다. 뭔가 이것저것 하긴 하는데, 그게 뚜렷한 목적을 가지면서 진심을 다하는 활동이 아니라 미래의 불확실한 리스크를 최소화하기 위한 안전 장치를 만들어두고자 한 것이었다. 돈을 저축한 게 아니라 사람, 경험, 학위를 저축한 것이었다. 즉, 인생의 다른 가치를 찾아 떠나는 것도 돈을 추종하는 삶과 본질적으로 크게 다르지 않았다.
자본주의에 매몰되는 건 정답이 아니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자본주의는 가족, 자아 실현 등 인간을 행복하게 만드는 요소가 많이 누락되어 있다. 네트워킹이나 성장에 매몰되는 게 바람직하지 않은 이유도 똑같다. 그것들은 인생을 더 풍부하게 만드는 진정한 가치의 수단이 되어야지 목적이 되어선 안 된다.
자주 웃고 많이 웃는 삶, 지적인 사람들이 보내는 존경과 아이들이 주는 애정을 누리는 삶, 정직한 비평가들의 칭찬을 얻고 거짓된 친구들의 배신에도 무너지지 않는 삶. 아름다움을 알고 다른 이의 장점을 발견하며, 건강한 아이를 낳든 텃밭을 가꾸든 사회적 조건을 향상하든 세상을 좀 더 나은 곳으로 만들고 가는 삶. 단 하나의 생명이라도 내가 산 덕분에 좀 더 수월하게 숨 쉴 수 있었다는 사실을 아는 삶. 이것이 성공한 삶이다. - 일터의 소로 240p
난 인생을 진지하게 살아내고 싶다. 한번 사는 인생, 죽음으로 어차피 끝나는 인생이라 하더라도 엔트로피는 최대한 있는 힘껏 낮추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성과 진심을 담아야 한다. 진심을 담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외면하지 말고 부딪혀야 한다. 나 자신과 나를 둘러싼 환경을 깊이 이해해야 한다.
소로는 월든 호수로 가서 그렇게 살았다. 인위적인 부분들을 많이 덜어낸 자연은 그 자체로 훌륭한 질서가 있는 시스템이라 생태주의적인 삶의 실천법은 명확하다. 친환경적으로 농사하고 지역공동체에서 교류하며 조화로운 삶을 추구하면 된다. 나는 인위적인 부분을 덜어내고 싶진 않다. 현대 자본주의 경제 시스템같은 인위적인 것까지 품을 수 있어야 인생을 진정으로 산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자본주의는 앞서 말한 것처럼 인류에게 있어 훌륭한 시스템이다. 돈을 벌고 돈을 쓰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 이 시스템 안에서 꿈을 이루는 사람들도 많다. 우리가 해야 할 것은 자본주의를 정확히 이해하고 휘둘리지 않고 그 안에서 진실된 삶을 꽃피워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태도가 자본주의를 변화시킬 수도 있고.
이 이야기는 자본주의 뿐만 아니라 기술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AI 기술의 발달이 수많은 사람들의 일자리를 위협하고 있다. 일자리가 위협당하는 일은 인류 역사상 드문 일은 아니지만 영향력이 점점 세지는 게 문제다. 자본주의가 전 세계 사람들을 옭아매고 있는 것처럼, 기술도 점점 사람들을 훌륭하게 옭아매고 있다. 기술 때문에 소외받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고 희한한 기준으로 사람들이 또 줄세우기 당할 것이다. 기술을 위한 삶은 인간적이지 않기 때문에 바람직하지 않으며, 기술이 이 세상에 만연할 것이기에 기술을 부정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나 자신, 그리고 나를 둘러싼 기술을 올바르게 이해해야 한다. 그 이후에야 기술을 이용하여 진심을 담은 삶을 살아낼 수 있을 것이다.
2025년은 좀 더 진실되게 삶을 살아내는 게 목표다. 그래서 세 가지 키워드 중 두 가지를 정했다(하나는 아직 정하는 중…) 안정화, 한계수용. 이 중 한계수용은 좀 더 “나 자신을 알라”와 같은 말이다. 나의 한계를 인지하고 수용하여 더 솔직한 나를 세상에 내보인다는 것이다. 나는 자본주의나 기술에 휘둘리지 않을 자신은 있지만 그걸 외면하지 않을 자신은 없다. 왜 그럴까? 현상을 이해하는 것부터 출발해야 한다. 경쟁에서 이길 수 없을 것 같아서 지레 겁먹고 외면하는 게 아니라 제대로 들여보아야 한다. 이 세상과 내가 더 바람직한 방식으로 상호작용하도록 힘쓰려고 한다.
나는 세상 사람들이 가능한 한 다채롭기를 바란다. 개개인이 아주 신중하게 자기만의 길을 찾아 따라가기를, 아버지나 어머니나 이웃들의 길을 따르지 않기를 바란다 - 일터의 소로 29p